힘든데 왜 뛰어?

기사작성 : 2018-04-09 17:56

러너라고 소개하면 친구들이 묻는다
임현은 모두 중독됐다고 답한다

본문


다년의 경험으로 깨달은 바, 소설이 잘 써지지 않을 때 가장 효과적인 대처법은 계속 소설을 쓰는 것뿐이다. 그 외에 별다른 대안이 없다. 찬물을 뒤집어 쓴다거나, 카페인을 과량 섭취한다거나, 집필 환경을 바꿔보고자 시작한 물걸레질이 예상외로 큰 도움이 됐더라는 주변의 조언을 종종 듣기도 하지만 그것 모두 계속 쓰기 위한 예비과정일 뿐이다. 그러니까 아무리 냉수마찰을 하고 커피를 1리터씩 마신다고 하더라도 다시 책상 앞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결국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말하자면, 버티고 견디고 물고 늘어지는 일이야말로 소설 쓰기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셈이다.

무엇보다 소설가들이란 거의 매일 소설이 잘 써지지 않는 사람들 아닌가. 모니터의 빈 문서를 노려보며 자주 무언가를 견디는 일이 직업이 된 사람들이다. 그게 가장 중요하다. 그 상태 그대로 오래 노려보는 것. 끈기, 성실함, 아무튼 뭐 그런 기본적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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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어느 자리에서 소설가들끼리 모여 이야기하다가 서로의 공통점을 확인한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근래 유익하게 읽은 서적들을 공유하고, 글쓰기의 어려움을 토로하던 중에 누군가 얼마 전부터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말을 꺼냈던 것이다.평소 허리가 좋지 않아서 오래 앉아 있기 힘들다는 것이 요지였는데, 그것을 시작으로 또 다른 사람은 전부터 손발이 자주 저린다거나, 그게 터널 증후군의 초기 증상이라거나, 신체 어디쯤을 짚어주며 이곳을 누르거나 주무르는 게 효과가 좋다, 지압 자리를 알려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날 우리의 화두는 단연 검은콩이었다. 그걸 볶아 공복에 복용하는 것이 원형탈모에 좋다는 내 말을 모두가 주의 깊게 경청해주었던 것이다. 그날의 분위기란 전혀 소설적인 데 없이 현실적이어서, 어째서 아픈 데 없이 몸 성하게 소설을 쓰는 일이란 불가능한 것인가를 새삼 고민하게 만든 자리였다. 단순히 오래 계속 쓰려는 것뿐인데 그러지 못할 사정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 왜 계속 쓰냐고?
뭐 하나 좋은 게 없어 보이는 일을 왜 자꾸 하냐고?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러너라면 이런 설명으로 대신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일명 ‘러너스 하이(Runner’s High)’. 달리면 달릴수록 중독되는 그 이상한 기분 말이다. 30분 이상 달리고 있는 사람의 경우, 분당 120회 이상의 심장박동과 함께 중추신경계에서는 흡사 마약 성분과도 같은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달리기가 고통이나 우울증 완화에 효과적인 것도 이 때문이다. 그에 따른 중독성이나 행복감조차 마약을 복용했을 때와 매우 유사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러니까 쓰는 일도 뭐 그런 거 아닐까. 좀처럼 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이 방면에서 가장 이름난 중독자라면 아무래도 무라카미 하루키가 대표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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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장 외야석에 앉아 외국인 용병 선수의 2루타를 바라보며 ‘소설을 써보자’라는 생각을 처음 떠올렸다는 이 문학청년은 훗날, 노벨 문학상의 유력 수상 후보로 해마다 거론되는 명실상부 세계적인 작가로 성장한다. 그러나 그런 대단한 대문호조차 “소설가가 된 내가 맨 처음 직면한 심각한 문제는 건강의 유지였다”라고 고백한다.

그도 그럴 것이 밤낮없이 원고에 매달리며 하루에 담배를 3갑씩 피워댔던 것이다. 무엇보다 관리하지 않으면 쉽게 불어나는 체중도 문제였다. 당시 하루키의 동네는 그럴듯한 스포츠센터가 갖춰진 환경도 아니고, 테니스를 하기엔 받아줄 상대도 코트도 마땅하지 않았으므로 망설임없이 집 근처 운동장을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얼마나 달려댔는지, 나중에 마라톤 풀코스를 30회나 완주하기에 이른다. 정말이지 지독한 중독 증세가 아닐 수 없다.

하루키의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는 그의 인생을 사로잡은 소설과 달리기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말하자면, 이 책은 어느 중독자의 투병기인 셈이다. 무엇이 그를 몰아의 상태로 내몰았는지, 그것으로부터 왜 벗어날 수 없었는지, 더욱이 당신도 이렇게 될 수 있다는 점, 달리기를 끊지 않고 지금의 상태를 계속 유지하게 된다면 앞으로 당신이 무엇을 겪고 그게 얼마나 치명적일지, 이 한 권에 모두 들어있다.


소설가 임현은 러너다. 그가 2월부터 <러너스월드>와 같이 달리고 있다. 2월에는 <모든 달리기는 훌륭하다>고 러너들을 위로했다. 4월에는 러너들이 계속 달리는 이유를 알려준다. <중독을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다.


사진=게티이미지스(Gettyimages)
일러스트=댄 우드거(Dan Wood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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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by 임현

러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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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너스월드 코리아> 2018 12월호


전국체육대회에서 만난 육상 선수들의 표정에는 절실함이 가득했다.
러닝 장비를 고르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도록 최고의 아이템을 엄선했다.
도쿄 러닝 컬처가 궁금해서 도쿄의 러닝 크루들에게 직접 물었다.
빨리 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같이 달리는 것도 중요하다. "친구와 함께 하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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