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록으로만 남을 사람이 아니다

기사작성 : 2019-02-12 14:43

'고통의 여왕' 아멜리아 분의 부상 극복기

본문


팬들은 아멜리아 분(Amelia Boone)을 ‘고통의 여왕’, 혹은 장애물 코스 경주계의 ‘마이클 조던’이라고 부른다. 72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40kg 중량의 짐을 나르거나, 한겨울 꽁꽁 얼어붙은 강 위에 앉아 오래 버티는 등 그의 범상치 않은 행동 때문이다. 그는 장애물 코스 경주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총 4회 우승했고, 지난 5년간 각종 대회에서 50회 이상 수상대에 오른 뛰어난 선수다. 전업으로도 이루기 힘든 이 업적을 그는 정규직 변호사를 병행(최근에는 애플사에서 일한다)하며 이뤄냈다. 또, 얼마 전부터는 울트라러닝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처럼 화려한 결과를 이끌어내기까지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어느 순간 그의 내면에는 두려움이 자리를 잡았으며, 신체적인 피곤함이 절정에 달했을 때 그는 결국 절대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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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고된 휴식
마치 이상한 공간에 갇혀 있는 것 같았어요.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저는 장애물 코스 경주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어요. 4회의 세계 선수권 우승, 그것만으로 당분간 저를 제칠 사람은 없어 보였죠. 자만심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당시 저는 매번 이기고 있었어요. [A]상위권에 오르지 못한 적이 없었죠. 한 대회가 끝나면 ‘우승할 수 있는 다음 대회는 무엇일까’ 고민하는 것에 집중했어요. 외면적으로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내면적으로는 그렇지 않았어요. 장애물 코스 경주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찾길 열망했죠.

결국 ‘울트라러닝’이라는 것을 찾아 도전했어요. 그로부터 얼마 후, 2016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 말리부에서 열린 ‘션 오브리엔(Sean O'Brien) 100k’에 참가했어요. 두 번째로 참가한 울트라러닝 대회였죠. 여기서 좋은 성적을 거둬 ‘울트라마라톤의 슈퍼볼(Super Bowl)’이라 불리는 웨스턴 스테이트(Western States) 대회[B]의 참가권을 따냈어요. 당시 저는 러너로서 정상을 달리고 있었어요.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죠.

저는 어렸을 때부터 러너로 자라지 않았어요. 제 주행거리를 측정해 본 적도 없죠. 그래서 트레일러닝 훈련 과정을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 몰랐어요. 결국 다른 울트라러너가 하는 방법을 보고, ‘나에게도 통할거야’라는 생각으로 무작정 따라했어요. 제가 과하게 달리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당시 저는 때로는 휴식이 필요하다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으니까요. 휴식은 나약한 사람에게나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죠.

2016년 4월,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한 대회에서 내리막 구간을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허벅지에 타는 듯한 고통이 찾아왔어요. 마치 다리가 끊어져 둘로 나뉘는 느낌이었죠. 다리를 절뚝이면서도 단순한 근육 문제이길 기도했어요.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바닥에 발을 딛는 순간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으면서 바닥에 나뒹굴었어요. 그동안 너무 과하게 달려왔던 거죠. 결국 제 스스로 대퇴골을 부러뜨린 셈이었습니다.

전 그동안 다른 사람들에게 ‘프리햅(PREHAB, 예방운동), 강화, 균형’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했어요. 그런데 정작 그 당사자가 신체에서 가장 단단한 뼈[C]를 스스로 부러뜨렸으니, 얼마나 우스운 꼴이었겠어요. 전 수치심과 당황스러움에 휩싸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잘못한 것이 없다!”고 외치며 화를 내고, 사실을 부인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시간이 지나니 자책감이 들면서 더욱 기분이 나빠지더라고요. 24시간 돌아가는 자책의 회전목마를 탄 것 같았죠. “겸손했어야 했어, 더 잘 알았어야 했어, 나 자신 말고는 비난할 사람이 없어”와 같은 말이 계속 재생되는 회전목마 말이죠. 다른 사람들에게 제가 왜 다쳤는지 설명하는 것 자체도 부끄러웠어요. 특히 부상에 대해 잘 아는 러닝 선수들에게는 더했죠. 그들이 “그간 증상을 느끼지 못했어?”, “누가 대퇴골이 부러질 때가지 달려?”와 같은 말을 던질까봐 두려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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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은 특히 감성적으로 예민한 여성에게 더욱 힘들어요. ‘뭔가를 잘못한 사람’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이죠. 한 번은 인터넷에서 저를 두고 “너의 골밀도 상태는 어떠냐”, “생리는 제때 하는 거냐” 등의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내는 글도 봤어요.
그걸 보고 생각했어요. ‘일단 기다리자’고 말이죠. 모두에게 ‘나는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 ‘나는 기록으로만 남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빨리 선수로 돌아가야만 했어요. 그래서 저는 미친 사람처럼 재활훈련에 몰입했고, 시즌이 끝날 때까지 성공적인 복귀를 이뤄내겠다고 스스로 맹세했어요.

재활훈련을 시작해도 좋다는 진단을 받은 다음날, 저는 지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수영장에서 다리 사이에 부표를 끼우고 출발선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어요. 고글을 낀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죠. 그러고는 자전거 운동기구에 올라타 팔과 다리를 단련하고, 운동강도가 악랄하기로 유명한 스키에르그(SkiErg)[D]를 이용해 매일 1시간 이상 운동했어요. 또, 개수 제한 없이 실패할 때까지 턱걸이를 했고, 한 다리로 버티면서 팔굽혀펴기도 했어요.
그러던 도중, 목발 자체가 일종의 운동이 될 수 있다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이후 저는 웨스턴 스테이트 대회에 참가해 13km 가량을 목발을 짚으며 걸었어요. 무려 13km를 말이죠! 사람들은 저를 보고 “기네스 세계기록에 목발을 짚으며 마라톤을 한 사람으로 등재되어야 한다”고 말할 정도였죠. 그때 손에 물집들이 생겼는데도 어떤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는 것 또한 내심 자랑스러웠어요. 그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입은 제 몸에는 감사하지 못했지만요. 만약 지금 부상을 입어서 목발을 짚으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제발 멈추세요. 효과가 전혀 없어요!”[E]라고 외칠 거예요.

이것 외에도 저는 하지 말았어야 했던 일들을 거의 다 했어요. 제 딴에는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건강을 유지하려 했던 거죠. 하지만 강도 높은 교차 훈련을 통해 나쁜 습관들과 불균형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했어요. 목발을 짚고 나와 달리기 시작한 지 3주 후, 저는 결국 왼쪽 천골(허리 아래쪽에 위치한 골반을 구성하는 뼈)에도 피로골절을 입었어요. 자전거를 타거나 한쪽 다리로 서서 뛸 때 자극을 받던 부위였습니다. 그제야 저는 제가 몸을 완전히 망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6개월의 회복기간이 갑자기 두 배로 늘어나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II. 화려한 과거, 그리고 이면
저는 선수로서의 제 커리어를 대퇴골 부상 이전과 이후로 나눕니다. 개인적으로는 ‘대퇴골 사건’이라고 부르죠. 어쨌든, 부상 이전에 저는 제가 참가한 모든 대회의 전날 밤을 걱정으로 지새웠어요. “만약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면 어쩌지?”, “그러면 스폰서들이 떨어져 나가지 않을까?” 이런 내적인 걱정들은 물론 외적인 압박도 받았어요. “꼭 이겨야 해, 아멜리아. 계속해서 이겨야 한다고.”,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면 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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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아가 가장 좋아하는 장애물 코스는 언덕 구간에서의 양동이 나르기다.


사람들이 저를 바라보는 모습들도 그대로 떠안아야 했죠. “아멜리아는 터프한 사람이야.”, “아멜리아는 어떻게든 극복할 거야.”[F] 이런 점들 때문에 저는 절대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없었어요. 왜냐하면 저는 사실 대회 전, 저에게 큰 기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실망시킬지도 모른다는 불안함과 초조함에 눈물까지 흘리는 여자라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많은 사람들이 제 SNS 계정에 있는 하이라이트 영상만 보고 저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제가 사기꾼이 된 기분이었어요. 그래서 달리고 이기는 것, 이 두 가지가 제 인생의 전부가 되었어요. 자연스레 인간관계가 좁아졌고 소외됐죠. 그 대신, 승리가 주는 ‘확신’과 ‘기쁨’이라는 달콤한 열매에 의존했어요.

이처럼, 러닝과 경주는 제 정체성을 상징하는 매우 큰 요소였어요. 그 사실을 부인하거나 후회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며칠간 쉼 없이 이어지는 경주와 그에 따른 고된 훈련을 겪으면서 제 몸이 욕심이 넘치는 마음에 따라 수월히 움직여 줄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했죠. 제 마음은 온통 ‘승리’라는 것으로 가득했고, 몸도 이에 따라주길 원했어요. 과거에는 분명히 그랬습니다.

과거를 돌이켜서 만약 제가 제 신체, 특히 대퇴골을 신경썼더라면, 일주일에 145~160km를 달리지 않고 65km 가량만 달렸겠죠. 저는 제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했어요. 너무 늦기 전에 다른 이들에게 조언을 구하지도 못했죠. 제가 틀렸음을 인정하는 것은 곧 제가 약하다는 의미였고, 제 실수를 인정하는 것은 곧 실패를 의미했죠. 결국 5개월간 목발을 짚고 다녔음에도 저는 부상을 입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어요.

III. 재활
만성 피로골절 진단 이후, 저는 재활과정이 쉽지 않을 것이란 걸 시인했습니다. 처음으로 어떤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인 순간이었어요. 조언을 구하기 위해 몇몇의 사람들에게 연락을 했어요. 그중 한명은 러닝 코치이자 작가인 마리오 프라이올리(Mario Fraioli)였습니다. 그 역시 두 번의 천골 피로골절을 겪은 경험이 있었죠. 그는 제게 “몸을 쉬게 해야 한다”고 단언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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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순순히 따랐습니다. 아쿠아 조깅, 싸이클링을 비롯한 모든 훈련을 꼬박 한 달간 중단했어요. 가만히 있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들었지만, 그동안 제가 외면했던 휴식과 비로소 마주하게 된 순간이었어요. 그리고 마침내 다시 뛸 수 있다고 진단받았을 때, 저는 “이번만큼은 제대로 하겠다”고 스스로 맹세했어요.

이후 첫 재활훈련으로 1km를 달렸습니다. 통증은 사라지고 상쾌한 느낌을 받을 줄 알았어요. 하지만 뛰는 내내 아직도 제 천골이 아프다는 사실만 직시할 수 있었죠. 정상이란 느낌은 전혀 없었어요. 당시 심장박동기를 착용했는데, 측정결과가 1분에 100회를 넘지도 않았어요. 달린 것 같지도 않았죠. ‘1km 거리를 10분 안에 들어오면 안 된다’는 제한 때문이었어요. 재활훈련은 데이비드 로셰(David Roche)[G] 코치가 도와줬어요. 그는 “달리는 것이 아니라, 관절과 힘줄의 반응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당분간 대회에 출전하지 못하는 것은 그나마 견뎌내기 쉬운 부분이었어요. 하지만 재활 말미에 가장 힘든 시련이 찾아올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어요. 정신적인 측면이 산산이 부서져 내린 겁니다. 매일 다시 부상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였고, 제 몸에 대한 신뢰 자체가 없어졌죠. 저는 2017년의 대부분을 다시 달릴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과 혹시나 또 다른 치명적인 부상을 당해 1년을 더 쉬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보냈어요.

부상과 회복의 경계선에서 저는 신체적, 정신적, 감정적인 부분이 절망적으로 망가졌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모든 고난을 겪어내는 ‘고통의 여왕’으로 알려진 여성이 온갖 아픔과 시련으로 얼룩져 정신적으로 망가진 여성으로 탈바꿈된 거죠. 저는 확신으로 가득 찬 사람은 아니었지만, ‘나는 강하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되새기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했어요. 고통은 언제나 찾아오고 사라질 수 있지만, 1년을 더 쉬어야 한다는 두려움에만 빠져 살 수는 없었어요. 이제는 갑작스러운 두려움이 찾아오면 “나는 무너지지 않는다”고 자꾸 외쳐요. 그러면 정말 마법같이 두려움이 사라지죠.

IV. 재도약
재활 막바지에 있는 운동선수는 하나의 중대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언제 다시 경주를 할 것인지 말이죠. 저에게도 역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고, 저는 두 가지 선택지를 두었어요. 제 스스로 ‘모든 준비가 되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기다릴 것인지, 아니면 확신이 없더라도 한계를 인정하고 대회에 참가할 것인지 고민했죠. 후자를 선택하자니, 제 마음 속 깊이 자리하고 있는 자존심이 쉽게 허락하질 않았죠. 여기에 몇 가지 두려움이 더 있었어요. 첫 번째는 6년 연속 이어온 수상권 입상 기록이 깨지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더 이상 훌륭한 선수가 아니다”라는 이야기가 퍼질지도 모른다는 것이었고, 마지막 세 번째는 우승하지 못하면 팬들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죠. 결국 저는 후자를 선택했고, 제가 예상했던 첫 번째와 두 번째 두려움이 실제로 일어났어요.[H] 하지만 세 번째는 그러지 않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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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아 분이 미국 캘리포니아 주 산 호세의 트레일을 달리고 있다.


두려움을 안고 부상에서 복귀한 후 첫 번째 경주를 마치고 나서 깨달은 것이 있어요. 어떤 결과든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죠. 많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오직 저만 신경 쓰는 일이에요. 제 기록이 어떠하든 세상은 계속 돌아간다는, 어찌보면 당연한 이치를 이제서야 깨달은 거죠. 그리고 이를 통해 실수, 성공, 승리, 패배 등 일련의 과정에 얽매이지 않게 됐어요.

비록 기록상으로 저는 더 이상 눈에 띄지 않을지 몰라도, 내면적으로는 편안함을 얻어냈어요. 저는 이제 신체적, 정신적, 감정적으로 강한 러너이자 운동선수예요. 있는 그대로의 저를 드러내고 약점을 인정함으로써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이죠.[I]
이런 자신감은 올해 3월 마지막 주말에 열린 바클리(Barkley) 마라톤 대회에서 절정에 달했어요. 저는 그동안 99%의 실패 가능성이 있는 경주에는 참가하지 않았어요. 바클리 대회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모든 능력을 동원해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험난한 코스와 언덕, 안개 등 모든 악조건을 이겨내고 지속적으로 달려야 하죠.[J] 저는 두려움과 모험 정신이 동시에 발휘되는 이 대회의 참가여부를 놓고 몇 주간 고민했어요. 결국 출발선의 노란 문 앞에 서게 되었고, 그것만으로 하나의 성과를 얻어냈다고 생각했죠. 어려워 보이는 일은 애초부터 시도하지 않으려는 자기회의를 극복했으니까요. 스스로 시도할 수 있게 허락했으니 결과가 어떻든 성공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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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2018년 바클리 마라톤 대회에서는 한 명의 완주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32km 코스를 2번 지났지만, 2번째에서 시간제한에 걸리고 말았어요. 기록상으로는 험난한 그 코스가 저를 탈락시켰을지 몰라도 기분만큼은 좋았죠.
그동안 제가 우승한 어떤 대회보다도 이 대회의 ‘DNF(Did Not Finish)’ 탈락이 더 자랑스러웠어요. 논리적으로 들리지 않겠지만, 바클리 대회는 어느 때보다 스스로 자신감이 넘치도록 해줬어요. 아주 험난한 악조건[K] 속에서도 저는 오히려 즐겼어요. 부상 이후 처음 느껴보는 강인함과 만족감이었어요. 제 몸을 다시 신뢰하게 되었고, 다시 ‘살아있음’을 느꼈습니다.

V. 행복한 러닝
저는 이제 더 이상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아요. 과거에는 많은 대회에서 우승했어도 행복하지 않았어요. 그 이유도 몰랐죠. 우승 횟수가 늘어날수록 오히려 성취감이 덜했어요. 승리에는 절대 만족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그것이 저를 행복으로 충만하게 할 때까지 기다렸던 것 같아요. 우승 횟수는 저를 행복하게 할 수 없어요. 자신만의 어떤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다른 이들과 공유함으로써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저는 항상 놓치고 있었어요.

이제는 무엇보다 감사하는 마음을 우선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훈련으로 힘든 하루를 보내거나, 감정이 격해지거나 또는 갑자기 예민해질 때마다 저는 스스로 “그저 받아들여”라고 속삭여요. 부상을 당하기 전에는 이런 순간들이 많았어요. 그럴 때 이렇게 하면 정신이 집중됩니다.
저는 누구나 부상을 당하지 않길 바랍니다. 저 또한 다시 그 힘든 순간을 겪고 싶지 않고요. 하지만, 제게 일어났던 그 끔찍한 일이 오히려 그동안 제게 일어난 일 중에 가장 소중했어요. 앞으로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저 지금 당장, 오늘 기분이 매우 좋다는 것은 확실해요. 제가 러닝을 시작하고 난 이후로 지금보다 더 좋았던 순간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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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을 당한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제게 “넌 더욱 강하게 돌아올 거야”라고 말했어요. 그때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모두 한 대씩 때리고 싶었어요. 끔찍한 위로라고 생각했거든요.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지만, 적어도 강하게 돌아온 사실만큼은 인정해야겠네요.

※각주
[A]아멜리아 분은 ‘스파르탄 레이스(Spartan Race)’ 2013년 대회에서 우승했으며, 24시간 휴식 없이 장애물 코스를 달리는 ‘세계 최강 머드 레이스(World's Toughest Mudder)’ 2012년, 2014년, 2015년 대회에서 우승했다.
[B]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160km 트레일 경주로, 가장 힘든 트레일러닝 대회 중 하나다. 참가자들은 오르막 5.5km와 내리막 7km를 달려야 하며, 얼음으로 덮인 미들 포크 아메리칸 리버(Middle Fork of the American River)를 지나야 한다.
[C]스포츠 전문의이자 <러닝 스트롱(Running Strong)>의 저자, 조던 메츨(Jordan Metzl) 박사는 “대퇴골은 신체에서 가장 크고 강한 뼈입니다. 이곳의 고통이나 증상을 무시하면 피로골절을 겪게 됩니다”라고 설명했다. “뼈 안쪽이 부풀기 시작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바깥쪽이 갈라지고, 그게 지속되면 골절로 이어집니다.”
[D] 스키에르그(SkiErg)는 크로스컨트리 스키의 운동효과를 얻을 수 있는 운동기구다. 신체 주요 근육 조직을 지렛대처럼 이용해 저항케이블을 아래/뒤 방향으로 당긴다.
[E] 메츨 박사는 “목발을 짚으며 하는 운동은 효과적이지 않으며, 건강에 도움되는 것도 거의 없다”고 전했다.
[F] 사람들이 아멜리아에 대해 언급한 몇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장애물 코스 경주에서 일약 스타가 탄생한다면, 그 주인공은 분명 아멜리아 분일거다.”-아웃사이드(Outside) 잡지.
“그는 고통을 견뎌낼 만한 충분한 능력이 있으며, 은퇴하는 그날까지 오랫동안 많은 고통을 이겨낼 것이다.”-ESPN 방송.
팀 페리스(Tim Ferriss) 작가는 아멜리아와 인터뷰를 진행한 자신의 팟캐스트를 홍보하면서 “아멜리아는 남성 선수들의 99%도 이길 수 있는 여성 선수”라고 주장했으며, “아멜리아의 업적이 너무 많아 모두 읊는 것만으로 지친다”고 첨언했다.
[G] 데이비드 로셰는 전미 대회 2관왕이자, 미국 국가대표팀에 3차례 선발된 선수다. 올림픽 2관왕이다. 그는 현재 UTMB CCC 우승자인 클레어 갤러허(Clare Gallagher), 하드락(Hardrock) 100 우승자인 제이슨 쉴라브(Jason Schlarb), 웨스턴 스테이츠(Western States) 100 우승자인 캣 브래들리(Cat Bradley) 등 엘리트 선수들을 코치하고 있다.
[H] 아멜리아는 2017년에 조심스럽게 복귀했으며, 그 해 스파르탄(Spartan) 레이스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11위의 성적을 거뒀다. 그는 이 결과를 두고 “생애 최악의 성적”이라고 평했지만, “여느 때보다 행복하게 결승선을 통과했고, 내 자신이 너무 자랑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I] 아멜리아는 거리, 시간 등 자신의 러닝 기록과 훈련 기록이 담긴 구글 문서를 공개하고 있다. 그의 홈페이지(ameliabooneracing.com)에서 찾아볼 수 있다.
[J] 바클리(Barkley) 마라톤 대회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오지로 이어진 32km 코스를 5번 반복 완주해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러닝 대회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정식 발표된 대회 정보가 없어 비밀스럽고, 오직 40명만 참가할 수 있어 제한적이고, 지난 20년간 15명만 완주했을 정도로 험난하다.
[K] 2018년 바클리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던 선수들은 “이날 풍속이 40km/h에 달했으며, 굵은 비가 떨어졌고, 산비탈에는 얼음이 얼었고, 거기다가 천둥번개까지 내리쳤다”며 “최악의 기상조건이었다”고 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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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by 마리사 스티븐슨(Marissa Stephenson)

<러너스월드> 글로벌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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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너스월드 코리아> 2019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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