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나래

기사작성 : 2019-10-11 15:33

달리기 시작 2년 만에 서브3를 한 손나래, 어떻게 그럴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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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잠실 보조경기장에서 달리고 있는 손나래. 그녀는 여기서 자주 훈련한다. 손나래가 입고 있는 상, 하의, 양말, 포에버 플로트라이드 에너지 러닝화 모두 리복 제품.


어떤 사람이 갑자기 부자가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이런 의심을 한다. ‘땅을 팔았나?’ ‘투기를 했을까?’ 또는 누군가가 난데없이 외국으로 장기 여행을 떠나거나, 유학을 가거나 했을 때 이런 궁금증도 든다. ‘집이 원래 잘 살았나?’ ‘복권에 당첨됐나?’ 또, 어떤 작가의 글이나 그림이 이전과 달리 굉장히 좋아졌을 때도 ‘어디서 베낀 건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나?’라면서 의아해한다. 이런 의구심들은 대게 그들에 대한 나의 부정적인 시선에서 나온다. 쉽게 말해 그들의 사정이 갑자기 좋아진 배경에 그들이 어떤 편법이 썼나 싶고, 한편으론 ‘배가 아픈’ 것이다. 맞다, 이건 당사자들의 속사정을 모른 채 저지르는 나쁜 행위다(자연스럽게 드는 생각이기도 하다. 나는 그저 생각만 한다). 그렇지만 나의 ‘의심의 세계’는 그 영토가 계속 확장 중이다. 최근에는 ‘나쁜’ 것과는 성격이 약간 다른 의심이 생겼다. ‘저 사람은 어쩜 저렇게 잘 달릴까?” 하는 것이다. 달리기를 잘 하는 사람에 대해선 부정적인 선입견을 가질 수가 없다. 달리기는 돈이 많다고 해서 잘할 수 있는 건 아니고, 그 사람이 인조인간은 아닐 것이며, 자신과 똑같이 생겼는데 능력이 훨씬 뛰어난 쌍둥이 형제가 대회 때마다 몰래 출전하는 것도 아닐 것이며, 약물을 복용한 것도 아닐 것이다(이 부분은 의심이 들 만한데, 보통, 선수가 아닌 일반인이 자신의 기록 향상을 위해 약물을 복용한다는 건 내가 가진 상식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빨리 달리는 데 필요한 건 오로지 그 사람의 신체적, 정신적 능력에 달려있다,라고 나는 판단한다. 그래서 이 의심은 그저 그 사람이 ‘신기하다’는 인식에서 나온다. 정말로, 어떻게 그렇게 잘 달릴 수 있는지 궁금한 것이다. 손나래를 만나기 전에 나는 그녀를 잔뜩 의심했다.

보스턴에 가고 싶었어요
손나래는 2016년에 처음 마라톤을 접했다. ‘청춘 이어달리기대회’에 참가해 같이 뛰자는 친한 동생의 요청으로 5km 릴레이 주자로 나선 게 처음이다. 그리고선 마라톤에 점차 빠져들었는데, 그해 춘천마라톤대회에 나가 첫 풀코스를 완주했고, 이듬해 11월에 열린 2017 중앙서울마라톤대회 풀코스에 출전, 3시간 11분 01초의 기록을 냈다. 또 그 다음해 봄에 그녀는 2018 서울국제마라톤 겸 제89회 동아마라톤대회에 나가 2시간 56분 39초로 피니시라인을 통과, 자신의 생에 첫 서브3를 이룸과 동시에 2018 동아마라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고 ‘영러너어워즈(Young Runner Awards)’에 뽑히기도 했다.

마라톤을 시작한 지 불과 2년 만에 그녀는 고수가 됐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내가 가진 상식으로 판단하건데 그녀는 분명 운동을 꽤 했던 사람이다. 힘든 육체적 활동에 오래 길들여진 사람이라고 할까? 한마디로 몸 깨나 쓰는 사람이었을 거라는 의심을 했다. 그러지 않고선 저러기가 힘드니까. 아무리 체력이 좋아도 2년 안에 풀코스를 서브3로 통과하기란 많이 어려운 일이니까. 그래서 나는 그녀를 보자 마자 연거푸 같은 질문을 던졌다.
“달리기를 하기 전에 어떤 운동을 했어요?”
“달리기를 시작할 즈음 탤런트 이시영을 만나고 싶어서 복싱을 10개월 정도 했어요.”
“그러니까, 복싱을 하기 전에 다른 운동을 했나요?”
“회사 다니면서 틈틈이 피트니스 센터에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어요.”
정말일까? ‘의혹’이 풀리지 않아서 취조하듯이 그녀를 몰아갔다. 일단 어린 시절부터 캤다. 손나래는 서울에서 자랐다. 그녀의 학창시절은 평범했다. 남들처럼 노는 게 좋았지만 노는 데 정신이 팔려 부모님 속을 썩인 적은 없었고, 그렇다고 우등생이나 모범생은 아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닐 때도 별 문제는 없었다. 쉬지 않고 10년을 일했으니까. 여기까지 봤을 때 그녀는 운동 문외한이다. 하지만 그녀가 달리기를 잘하게 된 단서가 있긴 하다. 엄격한 통금 시간이다.
“부모님이 엄한 편이었어요. 학교 다닐 때 통금 시간을 정해 놨는데, 집에 들어가는 시간이 늦을 것 같을 때 빠르게 달려야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순간들을 몸이 기억하고 있지 않았나 싶어요. 지금 심폐지구력과 스피드가 향상된 데 영향을 끼친 것 같아요.”
그럴 듯한 해명이지만 석연치 않다. 약속 시간을 맞추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려본 사람이 어디 그녀뿐일까? 이것 말고 달리기를 잘하게 된 그녀만이 가진 비장의 무기가 있을 것 같다. 얘기를 더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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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기록 욕심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저 달리기가 좋았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전 애주가에요. 달릴 주(走) 보다 술 주(酒) 욕심만 있어요. 달리는 걸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레 마라톤에 도전하게 됐고, 운 좋게 서브3를 달성한 것뿐이에요. 좋은 사람들과 함께 달리는 것 자체를 좋아해요.”
이 대답도 그럴 듯하지만, 너무 상투적이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무진장 많은데, 그녀처럼 모두 서브3 기록을 갖고 있진 않다. 내가 보기에 그녀는 기록을 내야 하는 목적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간절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도대체 그녀는 왜 이토록 빨리 달리기를 원했을까? 집요하게 물으니 이윽고 실토했다.
“보스턴 마라톤에 나가고 싶었어요. 거기 나가려면 기준 기록이 있어야 하잖아요? 2018년 당시 보스턴 마라톤에 참가하려면 제 나이 대의 사람들은 3시간 20분 안에 풀코스를 달려야 해요. 어떤 사람이 저한테 그랬어요. 마라톤 인생은 보스턴 마라톤 출전 전과 후로 나뉜다고요. 그 말에 혹했죠 뭐.”
답이 나왔다! 그렇지, 서브3는 그저 달리기를 좋아한다고 달성할 수 있는 기록이 아니다. 운동 능력이 좋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녀는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나가 새로운 마라톤 인생을 체험해보고 싶었다. 그녀가 빨리 달릴 수 있었던 이유, 대충 답이 나왔지만 충분하진 않다. 그녀는 왜 새로운 마라톤 인생이 궁금했으며, 새로운 마라톤 인생을 경험하고 나선 뭘 하려고 했는지 등등. 꼬리를 물며 이어지는 질문을 단번에 끊을 수 있는 답이 필요했다.

매일 술을 마실 거예요
손나래는 특이한 주법으로 뛴다. 달릴 때 ‘포어풋’ 기술을 쓰는데, 착지를 발 앞부분으로 한다. 그녀는 이 주법을 오픈케어(OPEN CARE) 함연식 코치의 100일 프로젝트에서 실시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배웠고 이윽고 이것이 시너지 효과를 냈다. 그녀는 달리기 초보 시절 트레일러닝 10K에 도전했다가 고생을 좀 했고, 이후 부상 없이 달리기를 하는 방법을 찾다가 오픈케어를 알게 됐다. 여기서 운영하는 ‘미드풋 러닝 클래스’를 들으면서 효율적인 달리기 기술을 처음 익혔다. 함연식 코치가 말하는 손나래는 이렇다.

“첫인상이 육상에 최적화된 이미지였어요. 장거리 쪽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않을까 싶었는데, 역시나 그랬죠. 나래 씨는 탄성이 좋아요.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했다면 탑 클래스가 됐을지도 몰라요. 그 정도로 우월했어요. 단점이요? 글쎄요. 하나에 꽂히면 꼭 해내는 거?”
함 코치의 말마따나 그녀는 달리기에 꽂혔다. 평소에 일찍 일어나는 편은 아니고, 잠이 없는 것도 아닌데, 지금도 가톨릭마라톤동호회 회원들과 꾸준히 새벽훈련에 참여하고 있는 걸로 봐선 확실히 그렇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포어풋으로 뛰는 것을 봐도 그렇다. 그녀가 달리기에 꽂혔다는 증거는 많다.

그녀는 술 마시는 걸 좋아한다. 마라톤 비시즌에는 일주일에 7일 술을 마실 정도로. 이렇게 좋아하는 걸 시즌이 되면 절제한다. 그녀는 서브3 달성을 위해 필요하다고 한 요건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절제’라고 했는데, 절제해야 할 목록 중 술을 절제하는 게 가장 힘들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술은 절제하면서도 달리기는 절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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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손나래는 부상을 심하게 겪은 적이 있다. 2018년 ‘동마’를 준비하면서 다쳤는데, 아픈 걸 참으면서 훈련했다. 훈련량이 늘수록 물리치료를 받는 시간과 먹는 진통제의 양도 같이 늘었다. 대회가 끝나고 그녀는 왼쪽 발 족저근막 파열, 발등 골절, 외측 인대 부분파열을 진단받았다. 몸이 이 지경이었는데도 고통을 참고 뛴 이유는 ‘다른 러너들이 부상당한 자신을 보면서 부상에 대한 두려움을 느낄까 봐’였다. 악바리인지 ‘미련 곰탱이’인지, 이러고서도 그녀는 ‘러너들의 세계’를 떠나지 않았다. 오픈케어와 가톨릭마라톤동호회 훈련에 계속 참석, 물 보급을 도왔고, 회원들의 달리는 영상도 촬영했다. 응원은 기본이었고. 회복이 거의 다 된 지금은 한국시각장애인마라톤클럽(VMK, The Visually Inpaired Marathoners of Korea) 멤버들과 ‘빛나눔 동반 주자단’으로 종종 달린다(가톨릭마라톤동호회가 남산에서 10년째 진행하고 있다).

“제가 이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알리기가 조심스러워요. 많은 사람들이 마라톤 대회에서 시각 장애인들을 이끌어 주는 걸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고 있거든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저와 동반해주는 분 덕분에 제가 지금도 달리고 있어요. 파트너와 함께 호흡과 템포, 페이스를 맞추는 일이 저에게는 훈련이고 또 즐거움이에요. 저와 같이 뛰어 주는 분은 저와 같은 팀이자, 러닝 파트너일 뿐이죠. 제가 오히려 그분들에게서 도움을 얻어요. 지금 제 파트너가 대한민국 최초로2020년 도쿄 패럴림픽에 출전하려고 열심히 훈련하고 있어요. 제 서브3 달성의 일등공신인 오픈케어 가물 주장님(이시현)도 함께하고 있죠. 파트너와 가물 주장님, 저,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합세해 좋은 기록을 내는 게 현재 목표에요. (그녀는 결국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지 못했다. 파트너가 같은 시기에 일본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에 참여하면서 그와 동행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그녀는 ‘달리기에 꽂혔다’는 수준을 넘어섰다고 할 수 있다. 그 다음 단계로 ‘달리기에 빠졌다’ 혹은 ‘달리기 덕후’가 되겠는데, 그녀는 이 단계도 훌쩍 뛰어넘어 달리기를 마치 사람처럼 대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니까 달리기와 사랑에 빠진 것이라고 해야 된다. 그래서 달리기가 시키는 대로, 마음가는 대로 따르다 보니 어느새 빨라져 있던 것이다. 드디어! 그녀가 달리기를 하는 이유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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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가 왜 좋아요? ‘같이 달리는 사람들이 좋아요’ 혹은 ‘건강해질 수 있어요’ 같은 상투적인 대답 말고요.”
“오래된 연인! 헤어지지 못하는 것 같아요. 달리기에 너무 빠져 있어요. 제가 아는 달리기의 전부가 제 안에 훅 들어와 있어요.”
“오늘 달리기와 헤어지게 된다면 내일부터 나래 씨는 뭘 할까요?”
“우선, 아침에 일찍 눈을 뜰 이유가 없을 것 같네요. 달리기를 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리고 저녁에도 달리기 준비물을 챙기는 일이 없을 거예요. 하루의 시작과 끝을 더 이상 달리기 생각으로 채우는 일은 없을 것 같아요. 그리고 1년 365일, 매일 술을 마실 거예요.”
아! 지고지순해라. 부디 그녀가 달리기와 헤어지는 일 없이 늘 행복했으면 좋겠다. 설마 달리기가 그녀를 배신하는 일은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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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나래의 ‘리복 포에버 플로트라이드 에너지’
무엇보다 플로트라이드는 폼이 좋은 것 같아요. 쿠셔닝이 좋네요. 덕분에 달리기를 하고 나서 느끼는 발의 피로가 적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아요. 제가 발 볼이 넓은 편인데 신축성이 좋은 니트 소재의 갑피가 발등을 편안하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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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by 윤성중

<러너스월드 코리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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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너스월드 코리아> 2019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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