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너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기사작성 : 2020-04-14 11:43

상상력을 동원하면 언제 어디서나
더 강해질 수 있다

본문


통증이 갑자기 폭탄처럼 터졌다. 생애 처음으로 나갔던 마라톤 27km 지점이었다. 그때부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예상하지 못한 순간 갑자기 몸에 고통이 찾아왔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엔돌핀이 마구 솟아나면서 신나게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더 당황했다. 지치기에는 너무 이른 지점부터 생각지도 못한 통증이 나타났고 남은 거리를 생각하니 까마득했다. 완주는 했지만 첫 마라톤 이후, 나는 27km 지점이 두려워졌다. 그리고 두 번째 마라톤에 참가했다. 다시 27km 지점이 다가오자 몸이 예민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첫 마라톤에서 폭탄을 맞았던 당시의 느낌을 몸과 머리가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페이스를 떨어뜨릴 만큼 힘들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점점 달리기 힘들어졌다. 첫 마라톤 때의 이미지가 나를 장악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미지가 신체 반응과 직접 연결되는 것을 몸소 체험한 이후, 나는 달리면서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이미지는 ‘회상’과 ‘창조’의 힘을 가지고 있다. 하나의 사건이 마무리된 후, 그 이미지를 떠올리고 되돌아 보면서 실수를 찾거나,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 개선 방법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때 모든 감각을 활용하여 마음 속으로 어떤 경험을 떠올리거나 새로 만들어내는 것을 ‘심상’이라고 한다. 그리고 러너들이 심상을 의도적으로 통제, 조절하면서 체계적으로 이미지를 이용하는 능력을 키우면 경기력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이러한 훈련을 ‘이미지 트레이닝’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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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트레이닝의 효과는 여러 종목의 정상급 선수들을 통해서 알 수 있다. 특히 한국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이미지 트레이닝이 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펜싱 에페 개인전 결승에서 장면이다. 한국 남자 펜싱 국가대표였던 박상영 선수다. 그는 막막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당시 스코어는 10:14로 박상영 선수가 헝가리 국가대표 ‘제자 임레(Geza Imre)’ 선수에게 4점 뒤져 있었다. 경기 종료 2분 전, 제자 임레 선수가 1점만 더 따면 그대로 박상영 선수의 패배였다. 박상영 선수가 우승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하나 뿐이었다. 2분 동안 단 한 점도 내주지 않은 채로 5점을 내는 것이었다. 관중들은 물론 중계를 시청하고 있던 사람들 모두, 박상영 선수의 우승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3라운드에 돌입하기 전, 박상영 선수는 “할 수 있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자기 암시를 거는 것이었다. 라운드가 시작되자 박상영 선수는 한 점, 한 점 차근차근 점수를 냈다. 11:14, 12:14 한 점씩 쌓았다. 그 결과, 15:14로 역전승을 거뒀다. 박상영 선수가 불가능해 보이던 상황을 뒤집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심리적 전략이 통한 것이다. 만약 심리적 훈련이 되어있지 않았다면 역전승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박상영 선수가 했던 것처럼 이미지 트레이닝이라고 하면 경기 전이나 연습 사이에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나는 회복 러닝 단계에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 것이 효과가 더 좋다고 생각한다.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데 필요한 것 중 하나가 멀티 감각이다. 오감을 활용하여 이미지를 직접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달리는 동안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면 이미 시각, 청각, 후각, 촉각, 운동 감각이 모두 열려있는 상태이다. 가만히 앉아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 것보다 더욱 생생한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릴 수 있다. 레이스에서 느낄 수 있는 감각, 환경이 조성되어 있고 회복 러닝이기 때문에 페이스가 느려 컨트롤하기 쉬운 상태이다. 이미지 트레이닝과 회복 러닝이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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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27킬로미터 지점을 통과하고 있다. 지금 몸은 매우 가볍고 리듬감도 좋다. 호흡도 안정적인 편이다. 이 느낌대로라면 35킬로미터 지점까지는 아무 문제없이 달릴 수 있다. 이대로만 가자. 내 발소리를 음악 삼아 템포를 맞춰 한 걸음, 두 걸음 달려가고 있다. 조금만 더 달려가면 응원 존이 있고 힘차게 달려오는 나를 기다리고 있다. 웃으면서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들과 하이파이브를 해야지!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이미지 트레이닝을 할 때는 성공하는 장면을 상상해야 한다. 내가 바라는 장면이나 성공하는 모습을 떠올려야 이미지의 힘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 최대한 동작이나 장면을 구체적으로 떠올리는 것이 좋다. 회복 러닝을 할 때 상상을 하면 긴장감, 현실감, 성취감 등 실제 레이스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 성공하는 모습을 반복해서 떠올리면 뇌는 그 모습을 상상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성공 경험’으로 인식한다.

몸은 생각이나 감정에 따라 반응한다. 화가 나는 일을 떠올리면 어느새 ‘분노의 질주’처럼 빠르게 달리게 되고, 우울한 감정일 때는 속도가 나지 않아 천천히 달리게 된다. 그러니 행복한 장면을 떠올리자. 42.195km를 달리면서 경험하게 되는 고통을 넘어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피니시 라인을 통과하고 있는 상상을 해보자. 어떤 포즈를 하면서 피니시 라인을 통과할까? 생각을 하다보면 그동안 했던 고된 훈련, 들인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는 느낌이 들 것이다. “해냈다!”하는 성취감으로 전율이 느껴지지 않을까? 이미지 트레이닝은 실제 상황에서 느껴질 수 있는 두려움이나 불안감은 감소시키고 반대로 자신감은 높일 수 있다. 나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통해 지난 춘천 마라톤에서 27km지점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통해 27km 지점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달릴 때 무슨 생각하세요?” 나는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그러면 나는 대답한다. “제가 지금이나 미래에 달리고 있는 모습을 떠올려요.” 레이스를 멋지게 완주하고 싶을 때, 반복해서 포기하게 되는 지점을 극복하고 싶을 때, 더 나은 러너가 되고 싶어진다면 상상을 시작하자.
‘눈 앞에 피니시 라인이 보이고 나는 이 순간을 향해 멈추지 않고 달려왔다. 나만을 위해 준비된 레드 카펫을 밟으며 사람들의 환호 속에 멋지게 골인해야지!’


기사 원문 : <러너스월드 코리아> 2019년 6월호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일러스트=데일 에드윈 머레이(Dale Edwin Murr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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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by 김윤희

<러너스월드 코리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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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너스월드 코리아> 2020년 6월호


달리기는 정신력으로 하는 것 : 은퇴, 스포츠 멘탈 코치, 심리 기술, 뇌과학까지.
클래식 음악으로 러닝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자.
매일 달리면 인생이 바뀐다.
김도연이 신은 특별한 레이싱화, 데상트 브이라잇
울퉁불퉁하고 바위가 많아도 달릴 수 있다. NEW NORMAL TR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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