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엘리트 선수 한용희는 왜 화가 났을까?

기사작성 : 2020-06-05 17:03

화가 난 엘리트 육상선수가 있다. 그의 얘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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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17여 년 달려온 엘리트 선수의 한용희의 울분이 있다. 올해 초 실업육상경기연맹에서 발표한 ‘2020년 실업연맹선수계약 규칙’ 중 계약 금액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우선 연맹에서 정한 계약금 지급 기준은 최저 2천만원, 최고 1억1천만이다. 계약금의 액수는 선수들의 기록에 따라 다르게 정해지는데, ‘최하 등급, 최하 기록을 수립하지 못한 선수들에게는 계약금을 지급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니까 마라톤 종목에서 2시간 13분 45초 정도 (이 기록이 규정에 나온 최하 등급, 최하 기록이다)의 기록을 가진 선수가 받을 수 있는 계약금은 2천~3천만 원이고, 그 이하의 기록을 가진 선수가 받을 수 있는 계약금은 없다. 반대로 2시간 6분 16초 이상의 기록을 낸 선수가 받을 수 있는 계약금은 1억 1천만 원 이상이다. 계약기간은 최초 실업 팀 입단 시 7년, 이 계약 기간이 완료된 후 다음 팀에서는 5년의 활동 계약을 맺는다. 계약금의 재조정은 4년 단위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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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희의 집에서 촬영.


한용희 선수가 ‘문제’ 라고 지적하는 부분은 기록에 맞춰 계약금의 액수를 정한 점인데 지금 활동 중인 남자 마라톤 선수 중에서 2시간 13분 이상의 기록을 가진 사람은 5~6명뿐이라고 한다. 계약금이 최초 실업 팀 입단 시 7년 이라는 점, 이렇게 정한 규정을 선수들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했다는 점이다. 그는 “계약 당사자들이 선수들인데, 어떻게 선수의 의사가 하나도 반영이 되지 않은 거죠? 그리고 왜 연맹이 나서서 규정을 만들죠?”라고 말하며 10대 시절과 대학교 4년이란 시간을 운동만을 바라보고 열심히 운동해서 간 실업팀에서 마주하게 되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하며 , 무엇보다도 규정이 만들질 때 선수들의 의견을 단 한번도 묻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 의아함을 토로했다. “불만을 개인 SNS에 옮겨 여러 사람에게 공개했는데, 제재나 불이익 같은 건 없었어요?” 라는 나의 물음에 “전혀요. 이 건으로 연락 온 데가 하나도 없었어요. 제발 연락 왔으면 좋겠어요. 제가 유명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은데, 아무튼 선수가 뭐라고 하던 관심이 없다는 거죠. 저는 지금 운동 그만둬도 다른 거 해서 먹고살 자신 있어요. 그런데 지금 막 선수 생활 시작한 어린 친구들이 너무 불쌍했어요.” 라고 답했다.

한용희는 2002년 소년체전부터 작년 전국체전까지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대회에 출전했다.
그는 주로 5000m, 10000m, 역전 경기, 하프, 마라톤을 뛰었는데, 아무리 살펴봐도 몇 해 연속 1등을 했다 거나 두드러진 기록 같은 건 없었다. 그러나 2002년 소년체전부터 시작해 작년 전국체전까지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대회에 출전했다는 게 눈에 띄었는데, 그게 나한테는 ‘심쿵’ 포인트였다. 그의 17년 선수 생활이 요약된 A4 용지 네 장에서 고단함이 풍겼달까? 아직도 목표가 뭔지 모르겠고, 표류하는 인생 같은 보통의 직장인이라면 그의 달리기 인생에 뭔가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한용희를 만나서 물어보고 싶었던 건 그 긴 시간을 어떻게 달리기만 하면서 버텼을까? 그를 버티게 한 원동력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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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희는 중학교 2학년 때 육상 선수가 됐다. 원래는 축구 선수가 되고 싶었다. 축구 만화 <우리들의 필드>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그런데 그 주인공이 축구를 더 잘하기 위해 달리기를 하는 장면에서 페이지를 넘길 수가 없었다. 주인공이 달리면서 “심장이 파열될 것 같아!”라고 말하는데, 그게 자신한테는 ‘너도 심장이 파열되는 게 어떤 건지 느껴보고 싶지 않아?’라고 속삭이는 것처럼 들렸다. 그래서 그걸 그대로 따라 했고 그날 한용희는 기분이 너무 좋아서 팔에 닭살이 돋는 경험을 했다. 당시 그가 살던 집에서 학교까지 거리가 약 10km쯤 됐는데, 만화책 주인공의 속삭임을 듣고 부터 한용희는 학교까지 가는 버스를 타지 않고 달려서 등교했다. 어느 날 학교에서 3km 달리기 시합이 열렸는데 당연히 한용희는 거기서 상급생들을 제치고 1등을 했다. 그러고 서는 본격적으로 육상을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 그렇게 잘 뛰진 못했어요. 다른 선수들에 비하면 월등하진 않았죠. 그 사실 때문에 속상하거나 좌절하지도 않았어요. 저는 그냥 계속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열심히 하면 다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용희는 바로 실업팀에 입단했다. 영동군청, 고양시청, 국군체육부대, 충주시청을 거쳐 지금은 서울주택공사에서 뛰고 있다. 팀이 여러 번 바뀌었어도 그는 한결같이 열심히 했다고 주위에서는 전한다. ‘전한다’ 라고 표현한 이유는 그가 열심히 했다는 객관적이고 직접적인 증거인 ‘좋은 성적’ ‘빠른 기록’이 표에 나타나 있지 않아 서다. 그도 이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 같다. 다른 선수들보다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왜 성적이 잘 오르지 않느냐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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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희의 방. '성공하면 페라리를 탄다'라는 문구가 적힌 포스터가 인상적이다.


“남들보다 열심히 한 건 아니에요. 그저 나 나름대로 열심히 한 거죠. 그래도 억울하거나 그러진 않아요. 최선을 다했으니까요. 시합만 나가면 몸이 다운돼요. 원인이 뭘까? 생각해봤는데, 훈련을 많이 한 상태에서 대회에 나가 체력이 빠져서 그런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어느 정도 조절해야 하는데 그저 심장 터지도록 뛰는 게 좋아서…”


한용희는 긍정적인 사람이다. 누구라도 그와 같은 상황에 있다면 크게 좌절하거나 진작에 나가떨어졌을 거다. 왜냐하면 성취감 없이 일상을 견디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누구를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인지 모를 그 속에서 자신의 미래를 그리는 건 눈 감고 길을 가는 것처럼 아슬아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한다면 한용희는 17년 간 열심히 견딘 거라고 할 수도 있다. 그 원동력은 ‘심장이 터지도록 뛸 때의 즐거움’일 것이고. 그리고 그는 믿는 구석이 있다. 그래서 이 악물고 달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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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에 붙은 동료들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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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by 윤성중

<러너스월드 코리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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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너스월드 코리아> 2020년 8월호


평범한 브라톱 THIS IS THE NORMAL.
왜 쳐다보나요, 그냥 달리는 건데.
러닝 중 위협이란 무엇인가?
나의 즐거웠던 시합.
코로나 시대의 방구석 러닝 챌린지.
체크하자 RE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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