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쳐다보나요, 그냥 달리는 건데!

기사작성 : 2020-11-09 17:42

“그냥 쳐다보는 건데 뭐가 문제야”라는 생각들을 밀어내는, 남성들의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브라탑을 입고 달리는 여성들의 달리기가 '당연하고 자연스런 모습'이 되는 순간, 남성들의 시선도 보다 자유로워질 것이다.

본문


여성들의 달리기가 금기시되던 때가 있었습니다. ‘달려라, 하니’를 보며 자란 세대들에게는 믿기지 않겠지만, 올림픽 경기에서 여성들이 마라톤 풀코스를 달리게 된 것은 1984년 LA 올림픽부터였습니다. 근대 올림픽이 시작된 후 100년 가까이 여성은 마라톤 주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어느 누구도 여성들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는 것을 ‘이상하게’ 보지 않습니다. 여성들만 참가할 수 있는 마라톤 레이스도 많이 있지요. 하지만 이런 시대가 오기까지는 ‘금녀’의 벽을 뛰어넘으려는 여성들의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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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몰래’ 참가한 여성 캐서린 스위처(Kathrine Switzer)는 달리던 중 코스 감독관의 제지를 받습니다. “번호표 내놓고 당장 내 대회에서 꺼져버려!” 순간 스위처와 함께 달리던 두 명의 남자가 훼방꾼 감독관을 코스 밖으로 밀어내버립니다. 당시 모습을 담은 사진과 영상은 역사적 장면으로 남아 있습니다. 스위처는 계속 달리죠. 4시간 20분 만에 결승점을 통과합니다. 스위처와 같은 용기를 보여준 여성들의 이야기는 카트리나 멘지스 파이크의 책 《그녀가 달리는 완벽한 방법》과 지식채널e 영상 ‘42.195㎞를 위하여’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스위처는 말합니다. “이젠 모든 여성들이 달립니다. 아무도 그걸 눈여겨보지 않죠. 왜냐하면 당연하고 자연스런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달리기에서 ‘남성 사냥꾼’의 진화생물학적 근거를 찾으려는 시도가 있기는 합니다만, 여성들의 달리기는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그냥 자연스런 신체 활동입니다. 그러나 불편하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 하나, ‘달리는 여성’을 바라보는 ‘남성적 시선(male gaze)’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줄어들긴 했지만 한여름 해변과 거리, 공원을 달리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달리면 땀이 나니 가벼운 옷을 입을 수밖에 없지요. 남성들은 상의를 완전히 벗은 채로, 혹은 러닝셔츠만 입고 달리지만 여성들은 어디 그런가요. 여성들이 달리기를 할 때 착용하는 의상 중에 ‘브라탑’이 있습니다. 이게 뭔지 잘 모르는 남성분들을 위해 사전을 인용해보면 이렇습니다. “브래지어 모양을 붙여서 만든 윗옷. 길이가 허리까지 내려오는 것도 있고 밑 가슴에서 조금 내려오는 것도 있다. 주로 속옷이나 스포츠웨어로 입는다. 규범 표기는 ‘브라 톱(bra top)’이다.”

포털 사이트에 ‘브라탑’을 입력해보면 ‘브라탑 티셔츠’, ‘브라탑 나시’, ‘브라탑 원피스’가 차례대로 뜨고 나머지는 모두 상표명이 앞에 붙어 있는 ‘OOO 브라탑’ 등이 검색됩니다. 1975년 미국에서 ‘자유롭게 스윙할 수 있는 테니스 브라’가 판매되기 시작했고, 1979년 ‘스포츠 브라’ 특허를 받았다고 합니다. 제가 이 분야 전문가인 것이 아니라 앞서 소개한 《그녀가 달리는 완벽한 방법》에서 인용해본 겁니다. 이 책의 저자는 호주 여성인데 스무 살 때 비행기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우울증에 시달리다 서른 즈음에 장거리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얻게 된 삶의 자유와 행복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 책에는 ‘달리고 있는 그녀는 안전한 걸까?’, ‘그렇게 쳐다보지 마세요’라는 장이 있습니다. 혼자서 인적이 드문 공원을 조깅하는 여성들의 불안감, 달리는 여성들의 ‘몸’과 ‘의상’을 ‘훔쳐보는’ 남성들의 시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찬찬히 읽어보면 저자의 우려와 문제 제기에 공감하게 됩니다. 다음 사례 두 가지를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사례1:
이른 아침 브라탑을 입은 여성이 한강공원에서 달리기를 하고 있습니다. 맞은편에서 산책하던 남성 두 명이 브라탑을 착용한 여성의 상체와 러닝복을 입은 다리를 아래위로 훑어봅니다. 달리기를 하는 여성은 순간 성적인 굴욕감과 모욕을 당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런 경우 우리 법률은 두 남성의 행위를 어떻게 평가할까요? 두 남성이 달리는 여성의 신체를 접촉하거나 여성을 폭행, 협박한 경우가 아니므로 강제추행으로 처벌할 수는 없습니다. 두 남성의 행위가 상대방 여성에게 성적 굴욕감을 준 경우 ‘성희롱’이 될 수는 있습니다만 성희롱 자체는 형사처벌 대상이 아닙니다.

# 사례2:
위 사례 1과 동일한 상황. 한강공원 나무 뒤에서 혹은 벤치에 앉아 있던 한 남성이 핸드폰으로 달리는 여성의 상체 또는 다리 부위를 클로즈업해서 찍습니다. 이런 경우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에 따라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됩니다. 최근 ‘텔레그램 n번방 사건’ 등으로 성 착취 동영상 유포가 문제되면서 법정형이 종전보다 강화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난 5월 19일 신설된 처벌 규정에 따라 위와 같이 찍은 동영상을 소지, 구입, 저장, 시청한 사람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됩니다. 화장실 ‘몰카’만 처벌되는 것이 아닙니다. 찍은 사람만 처벌되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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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1사례 2를 비교해보시면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사례 2의 경우 중한 범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데는 남녀 구분 없이 많은 분이 동의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례 1은 어떤가요. 두 남성은 말합니다. “그냥 쳐다본 것도 죄가 되나요?”, “눈을 감고 다니란 말인가요?”, “브라탑을 입었으니 당연히 눈길이 가지요!” 달리기를 하던 여성이 말합니다. “브라탑은 내가 달리기 위해 입는 건데, 왜 쳐다봐요?”, “이건 ‘시선 폭력’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입담 좋은 패널들이 나와 100분 토론을 해도 모두가 동의하는 결론은 나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문제를 드린 저도 정확한 답을 내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저는 1967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캐서린 스위처가 달리는 영상, 바로 그 장면에서 한 가지 힌트를 얻습니다. 당시는 여성이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는 것을 대부분의 남성들이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스위처의 배번 261번을 뜯어내고 코스에서 쫓아내려 뛰어든 코스 감독관의 말 속에 ‘남성적 시선’이 노골적으로 드러납니다. 이건 내 대회야! 남자들만의 대회란 말이야! 하지만 스위처는 계속 달릴 수 있었고, 마침내 42.195㎞를 완주하여 결승점을 통과합니다. 스위처가 계속 달릴 수 있었던 것은, 예! 그렇습니다. 그녀와 함께 달리던 ‘남성’ 두 명이 훼방꾼 감독관을 밀어내버렸기 때문입니다. 여성들이 입은 ‘야한’ 옷 때문에 성범죄가 발생한다는 발상, 여성에게 두려움과 모욕감을 줄 수 있는 ‘시선 폭력’을 “그냥 쳐다보는 건데 뭐가 문제야”라는 생각들을 함께 밀어내는, 남성들의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브라탑을 입은 여성들의 달리기가 “당연하고 자연스런 모습”이 되는 순간, 남성들의 시선도 보다 자유로워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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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by 좌세준

변호사, 법무법인 한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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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너스월드 코리아> 2020 10월호


여덜 개 호텔에서 쉬며 달렸다. 러너이자 작가들의 定住(정주)와 力走(역주).
러닝이 무릎을 망친다고? 진실을 파헤쳐 보자. 무릎을 망치는건 러닝이 아니야!
코로나 시대의 달리기 동기부여법. 우리가 '왜 달리는지'에 관해 다시 생각해 볼 기회이다.
신으면 "와!" 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러닝화 , 수피어, RO-70, Goov-001.
더 높이 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장대 높이뛰기 진민섭과 높이뛰기 우상혁의 브라더 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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